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친토 파케티 (문단 편집) === 국가대표 경력 ===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계속된 부진에 이탈리아 팬들은 기대를 잃어갔지만 자국에서 열린 [[UEFA 유로 1968]]에서 이탈리아는 부활을 알린다. 세리에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카테나치오]]를 국대에서도 잘 적용해 수비축구를 펼친 그들은 유로 본선에 진출한다. 파케티는 주장완장을 차고 수비를 이끌었고, 4강전에서 이탈리아는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소련]]을 만났다. 경기는 0-0 무승부, 이탈리아로서는 최고의 스코어였다. 당시는 [[승부차기]]가 없어서 동전던지기로 승부를 냈는데 소련의 주장인 셰스테르뇨프가 잘못 말해서 이탈리아가 결승에 올랐다. 결승에서 [[드라간 자이치]]의 유고슬라비아를 만났지만 [[루이지 리바]]와 아나스타시의 골로 앙리 들로네를 들어올린다. 파케티는 대회 내내 맹활약하며 올스타팀에 선정된다. 그리고 2년 뒤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1970년 멕시코 월드컵]], 그러나 이탈리아 국대는 고민이 컸다. 당시 이탈리아에는 [[산드로 마촐라]]와 [[잔니 리베라]]라는 두명의 플레이메이커가 있었고 이들을 공존시킬 방법을 찾으나 답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그들이 내린 결론은 전반전 마촐라 출전, 후반전 리베라 출전이었다. 거기다 1970 월드컵은 교체 제도가 처음 도입된 대회였다. 1차 조별예선에서 이탈리아는 [[이스라엘 축구 국가대표팀|이스라엘]],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우루과이]],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스웨덴]]과 함께 같은 조가 되었는데 이 조의 모든팀이 수비 전술을 펼치며 이탈리아가 단 1골을 넣고 1승 2무로 8강에 진출한다. 8강 상대는 개최국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멕시코]]였고 4-1로 박살내고 4강에 진출다. 그리고 4강에서는 [[프란츠 베켄바워]]의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서독]]과 다시는 나오지 않을 만한 명경기를 펼친다. 이탈리아는 일찍이 선제골을 넣지만 경기 종료 5분전 [[카를하인츠 슈넬링어]]의 동점골로 연장전으로 흐른다. 연장전 5분 서독의 뮐러가 역전골. 3분 뒤 이탈리아 부르니치의 재동점골. 6분 뒤 [[루이지 리바]]의 재역전골, 연장전반 종료. 연장후반 5분 [[게르트 뮐러]]의 재동점골, 하지만 곧바로 1분 뒤 [[잔니 리베라]]의 승부를 결정짓는 쐐기골. 9분 뒤 경기종료. 보다시피 연장전 30분 동안 무려 다섯 골이, 그것도 역전-재동점-재역전-재재동점-추가골로 이어지는 명승부였다. 그렇게 오른 결승의 상대는 브라질. 세계 최고의 창과 방패가 맞붙는 경기였는데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브라질]]과의 경기 역시 승리는 더욱 더 중요했다. 왜냐하면 통산 3번째 우승을 하는 국가가 줄리메컵을 영구히 가져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브라질의 4대1 대승이었다.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는 브라질의 스위칭을 이용한 공격축구와 양쪽 풀백의 오버랩 등 유기적인 공격적 움직임에 무너지고 만다. 카테나치오는 제한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브라질에게 계속 기회를 내주게 되는데 이 때 리베라는 지난 4강 연장까지 뛰었던 것을 감안해 후보로 시작하고 마촐라가 주전으로 나왔는데, 마촐라는 너무나도 부진했고, 결국 4:1로 패해 준우승에 그친다. 이후 [[1974 FIFA 월드컵 서독|1974 서독 월드컵]]이 끝난 후 1977년에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